그렇다.
인류멸망보고서
처참하게 멸망했다.
가루가 될 정도로 까였다.
봄벚꽃구경때 소풍가방에 넣어둔 쿠크다스봉다리를 가을 낙엽구경할때 발견했을때마냥 처참하게 까였다.
홈쇼핑에서 '세상에 이거보세요 여기 넣어둔 작품이 버튼 한번에. 순식간에.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어요.'라고 외칠만큼 까였다
그래.
이게 까일만했다 하자.
근데 이정도로 심하고 처참한 작품이였나?
나름 개성있는 배우에 케릭터 센 감독들이 나온 작품들이 있었고. 원작스토리도 뭐. 나쁘지 않았던
(위의 생각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런 작품이.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까이는데는 왜 도대체, 대관절,정체가 뭔가?
자. 머리식히고, 쿨타임되었다. 한번 다시 이야기를 보자.
우선 1편. 멋진 신세계.
뭐. 뜬금없다고 하지만. 그리 뜬금없거나 이상하지만은 않은 작품이다.초중반은.
연구소출신 주인공이 연구실에서 가져온건지 뭔지 모를 사과를 아무렇게나 버린것에서 시작된 영상은 꽤 괜찮았다.
음식물 쓰레기가 부어지고 갈리고 사료가 되어 소가 먹고 그 소를 다시 류승범이 먹는 이 리드미컬한 장면은 보는 맛도 있었고 꽤 신선했다.
그리고 그 결과.jpg
그렇게 흐르고 흐른 연쇄작용이 이런 좀비화를 만들어 낸다는거. 꽤 설정도 좋고 흐름도 좋다. 우리나라에서 뵙기 힘든 꽤 신선한 연출이였다.
또 망해가는 세상에서 토론자들이 모여가지고 별 시덥잖은 꼬리물기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의 '뻘스러운'행동들도 제법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세기말적인 욕망(식욕,색욕,물욕등등)이 넘처나는 사회 혹은 주인공과 그 이후 생겨나는 사랑이라는 느낌을 묘사하긴 뭔가 부족했다.
자. 고기먹고 서로 첫 만남을 가진 두 사람이
남자가 어떤 양아치놈들을 '기이한 힘'으로 때려잡은 다음에
나중에는 사과를 나누어 먹는다?
이거 너무 급전개잖아!
중간부분에서 '90분 토론'의 토의를 줄이거나 하다못해 게임동영상 대신에 여자가 남자를 애타게 찾거나, 남자가 잃어버린 폰을 찾으려고 돌아다니거나. 뭐. 이런식의 감정적 교류라도 좀 보여주고 아담과 이브스런 이야기를 했어야 되었지 않나 싶다.
관객들에게 세기말의 풍경은 보여주는데 성공했지만. 주 이야기를 마무리하는데 실패하신게 아쉽다.
그리고 2편이자 거의 메인 스토리 취급을 받은 작품. 천상의 피조물.
원작인 '레디 메이드 보살'을 본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뭐. 나쁘진 않은 각색이였다.
마지막의 '입적'신도 나쁘진 않았다. 이미지상으로 꽤 괜찮았다.
단편에 걸맞는 정도의 인물전개와 '로봇이 부처, 그러니까 최상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가?' 라는 것도 좋았다.
박해일의 차가운 목소리도 로봇에 어울렸고, 김강우의 로봇기사스러운 모습도 좋았다.
관찰자 VS 로봇의 구도랄까.
강회장과 인영의 로봇으로서의 입장과 인간으로서의 생각.
그리고 그 갈등을 드러내주는 본부장과 해주보살의 케릭터.
이들의 갈등들도 꽤 볼만했다. 이거...욕먹을 정도는 ㅇ
마지막. '해피 버스데이'
이게 무슨 병맛스러운 이야기냐고 많은 이들이 따졌지만. 괜찮은 설정 아냐? 신선하고.
'당구공을 주문했는데. 사이즈가 초대형으로 왔습니다. 그게 지구로 들이닥치네요'
이런 황당하면서도 재미난 아이디어... 제대로 살리면 멋지잖아?
문제는 요놈.
그리고 여러 디테일들도 멋졌다.
당구광인 아빠의 취미를 잘 보여주는 배경들이나, 자전거 페달을 밟아서 전기를 내는 기계나, 모포랑 깔깔이를 입거나 뒤집어쓰고 생존준비를 하는 민서네 가족들이나. 또 방의 곳곳의 디테일은 어떤가? 훌륭하지 않은가!
앞에 나온 멋진 신세계나 천상의 피조물보다 훨씬 디테일적인 부분이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또 민서와 은하철도999의 차장스러운 인물과의 만남도 나름 환상적이고 괜찮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론 '이 당구공 부쳤으니까 싸인해줘야지' 하고 왔다는 설정이지만 말이죠.)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너무 자세한 이야기가 없었다.
당구공을 주문하는 민서.그리고 닥쳐온 재앙(당구공)이란 것을 보여준건 좋지만 그 재앙의 원인을 짧은 시간에 관객들이 납득하거나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주지 못했다.
8번 당구공이 없어진걸로 아빠와 엄마가 다투면서 '물리학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를 언급하는 아빠와, 민서가 창문밖으로 던진 당구공이 구멍에 들어가면서 이상한 빛이 나오는 장면 정도,
또 아무 언급 없이 지구멸망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는 디테일하면서,
민서와 당구공에 대한 설명이나 가족간의 교류를 만들어주는건 삼촌의 화려한 말빨과 민서의 꺠달음밖에 없었다는게 아쉽다.
'내말은 씹어도 되는데 형수님과 형의 희망인 민서말까지 씹는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는 삼촌의 말로 또 가족간의 희망이 생기다니...그리고 차장과 민서가 서로 만나서 아이디 확인하고 손을 건내는 장면도. 뒤에서 엄마가 '민서한테 직접 주려고 전 지구 뒤졌나보다' 하고 말하는 걸로 끝나는건...좀.
그렇게 전 지구를 뒤지다보니까 추락속도가 늦춰졌고, 지구가 다소 부숴지긴 했지만(남산타워나 건물들이 뭉개진걸로 봐선 인간건축물만 뭉개진거 같습니다.) 지구는 완전히 부숴지지 않고 희망을 찾았습니다. 딴딴.
...앞의 멋진 신세계와 같이 세부디테일이나 뭐 그런것들은 좋은데 중간중간의 감정이나 느낌을 살려주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멋진신세계보다 이 해피 버스데이가 좋다. 좀 더 이해하게 해줬거든.)
결론적으로 말하면. 괜찮은 이야기. 괜찮은 디테일과 촬영,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모였고 괜찮은 영화가 나왔다.
하지만. 옴니버스영화인지라 여러가지 추려내는 과정이 필요했고, 그 추리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들이 날아가거나, 쓸데없는 부분들이 많이 들어간게 아닌가. 혹은 추려진 결과가 관객들에겐 아직 낮설었고, 그 때문에 영화가 악평을 받은게 아닌가 싶다.
결론
SF좋아하고, 단편좋아하시는 분들.
영화의 디테일이나 배경지식. 상황 찾아내는거 좋아하는 분들.
약간의 급전개나 이해못할것 같은 스토리도 한번 생각해보는 분들.
이거 한번 보세요.
아니면 추천하긴 좀....
'관심사 > 영화/만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달루시아의 개 - '이거 개판이잖아!'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생각해보면 (0) | 2012.05.17 |
---|---|
토끼 드롭스 - 몇가지 가리는 것만 없었다면 좋았을 영화. (0) | 2012.05.16 |
영자의 전성시대 - 신파극에서 해피앤딩으로 급작스럽게 바뀌면서.... (0) | 2012.05.09 |
M - 무수히 많은 M의 의미와 무수히 많은 M들 (0) | 2012.05.06 |
아르마딜로 - 전장에 선 병사들이 점점 변해가는 그 모습 (0) | 2012.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