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서가를 서성이다 보면 가끔 운명처럼 손에 잡히는 책이 있습니다. <혜성을 닮은 방> 도 그런 느낌이네요
예전에 GQ에서 소개한 것으로 기억되는 책인데, 표지와 내부의 감각적인 작화들 떄문에 오랫동안 인상이 남았었죠.
책의 내용들도 작가 특유의 감각이 저를 다른 세계로 잇게 만들어준 것 같았습니다. 이는 책의 핵심주제인 자폐라는 현실적 제약 속에 갇힌 소년의 내면과 환상적인 우주와 언어의 세계로 확장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는 세 가지 시점이 교차하며 흐릅니다. 현실 속의 주인공 '무이'는 가벼운 자폐증을 앓으며, 상담가인 어머니의 편지글을 대필하는 기묘하고 고독한 일상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을 상징하는 가상 공간에서 무이는 자신의 이동 수단인 '혜성'과 친구 '소우주'를 태우고 '에코 도서관'을 누비는 자유로운 탐험가가 됩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긴 책을 빌리는 무이의 여정은 슬프면서도 아름답습니다. 여기에 '에코어'라는 낯선 언어를 익혀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며 작품은 층층이 깊이를 더합니다.
자칫 복잡해 보일 수 있는 이 삼중 구조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입니다. 단순히 그림이 그려진 만화가 아니라, 텍스트와 이미지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문학적 체험을 선사하는 '그래픽노블'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작가는 무이의 단절된 세계와 타인의 마음이 맞닿는 지점을 섬세한 연출로 그려내어, 독자로 하여금 난해함 대신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식의 실험적이고 효과적인 메세지 전달방식은 화보집으로서의 가치도 있지 싶습니다.
또한 책에서 나오는 작가의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소재(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책 한권을 이루고 있다면? 상상과 현실의 세계를 드나들 수 있다면? 내가 찾는 물건은 왜 없는거지?등등)는 보고 또봐도 감탄스러웠습니다.
단순히 미국의 만화책을 그래픽노블로 번역하여 들어온 것이 아닌 '그래픽노블'이란것은 어떤것인지. 그리고 그래픽노블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어떤것이 있는지를 알고싶으시다면 이책을 꼭 봐주시길.
미국식 히어로 코믹스의 번역물에만 익숙했던 분들이라면, 한국 작가가 그려낸 이 밀도 높은 그래픽노블을 꼭 접해보시길 권합니다. 그래픽노블이라는 장르가 인간의 내면을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이 책 한 권이 증명해 줄 것입니다. 현실의 방을 떠나 잠시 혜성에 몸을 싣고 싶은 모든 분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 안내사항: 이 글은 과거 작성된 원본을 바탕으로 리브랜딩 과정을 거친 콘텐츠입니다. 당시의 주관적인 평가나 시대적 배경이 포함되어 있어 현재의 기준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래된 글의 군더더기를 정리하고, 더 많은 분과 취향을 공유하기 위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 A/S : 이런 작가님의 작품스타일은 <비수기의 전문가들>이나 <그림 여행을 권함> 에서는 현실과 상상공간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작품 스타일을, <책섬> 에서는 현실과는 다른 세계관을 선보이는 솜씨로, <카페 림보> 에는 현대사회 비판이자, 인간 개인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져 나갑니다. 혹시나 위 책이 마음에 안드셨다면, 지금 추천드리는 책들 중 본인의 키워드에 맞는 책들을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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