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사과 더미에서 발견한 엉뚱한 스파이의 길
포스터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줄넘기는 뭐고 거북이는 또 뭐야?"라는 의문이 절로 들게 하죠.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 스즈메의 사소한 강박에서 출발합니다. "100개의 계단을 30초 만에 오르면 운이 좋을 거야"라는, 소년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상상을 하며 계단을 뛰어오르던 스즈메. 그때 갑자기 위에서 사과들이 쏟아져 내립니다.
본능적으로 몸을 낮게 엎드린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계단 손잡이에 붙은 손톱만한 전단지, 바로 '스파이 대모집'이었습니다. "뭐야, 이게?" 싶을 정도로 막무가내인 설정이지만, 영화는 이 황당한 흐름을 동력 삼아 거침없이 나아갑니다.
범상치 않은 내공을 가진 조연들의 향연
이 영화의 진짜 묘미는 주연보다 더 막 나가는 캐릭터들에 있습니다. 짝사랑하는 선배를 만나게 해주겠다며 엄청난 사건을 벌이는 친구부터, 한때는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대머리가 되어버린 선배(그럼에도 그는 참 멋집니다), 그리고 하수구를 뚫으며 온갖 기괴한 도구를 모으는 아저씨까지.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독보적인 아우라를 뿜어냅니다.
그중에서도 제 마음을 가장 흔들었던 인물은 '일부러 맛없는 라면을 끓이는 아저씨'였습니다. 충분히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는 내공이 있으면서도, 스파이로서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철저히 '어정쩡한 맛'을 고집하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슬프기까지 했습니다. 재능을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 어색한 노력이 저에게는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켰거든요.
엉뚱함이 끝까지 성공할 수 있는 이유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본 특유의 재기발랄한 개그 영화 스타일을 고수합니다. 보통 이런 장르의 영화는 초반의 신선함이 중반을 넘어서면 익숙해지기 마련입니다. <불량공주 모모코>처럼 감동으로 선회하거나, <모두, 하고 있습니까?>처럼 꾸준한 잔재미를 줘야 하죠. 자칫하면 이야기가 산으로 가거나 허무하게 끝나버릴 위험도 큽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리하게도 '계속 엉뚱하게 나가기'를 선택했고, 개인적으로는 그 전략이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봅니다. 일상의 지루함을 비트는 상상력이 마지막까지 힘을 잃지 않거든요. 굳이 납득시키려 하지 않기에 더 매력적인 영화라고 할까요? 평범한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질 때,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며 보기 딱 좋은 작품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별점은 5점 만점에 4점을 주고 싶네요.
※ 안내사항: 이 글은 과거 작성된 원본을 바탕으로 리브랜딩 과정을 거친 콘텐츠입니다. 당시의 주관적인 평가나 시대적 배경이 포함되어 있어 현재의 기준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래된 글의 군더더기를 정리하고, 더 많은 분과 취향을 공유하기 위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 A/S: 주연인 우에노 주리같은 경우에는 위에 언급한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외에도 <스윙걸즈>, <노다메 칸타빌레> 와 같은 엉뚱한 매력의 주인공이 나오는 작품들로 많이 아실 텐데요. 그러나 <엘리스의 가시> 같은 복수극 이나, <우에노 주리의 다섯개의 가방> 과 같은 옴니버스에도 나오기도 했죠.그럼에도 놀랍지 않은 이유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에서 보여준 다양한 연기를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